베르사유 미대를 꽤 오래 다녔다. 파리의 집에서 학교까지 딱 한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 동네 생라자르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‘L선’이 오랜 시간 내 발 노릇을 해줬다. L선은 항상 좌석이 한가롭다. 파리-베르사유를 연결하지만 관광객의 90%이상이 파리 남쪽을 횡단하는 ‘C선’을 이용하는 까닭이다. 난 이 L선의 맨 구석 창가 자리의 순방향 좌석을 좋아한다. 사람들이 거기까지 잘 들어오지 않고, 등 뒤가 막혀있어서 불편함 없이 온전하게 안도감 속에서 이동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. 저 할아버님도 저 날 그래서 굳이 저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. 불편함 없이 온전하게 저 날의 고민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.
-사진작가 위성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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